[쌍용차 파업 그 후②] "20년 회사 다닌 게 무슨 죕니까?"
원문
레디앙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7525
미디어충청 : http://www.cmedia.or.kr/news/view.php?board=news&nid=5433
프레시안 : 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302150000§ion=02
참세상 :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5869
지난해 8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선
77일간의 공장 점거파업을 끝내고 공장 문을 나섰다. 그로부터 200여일. 2010년 3월, 파업에 참가했던 노동자들과 쌍용차
공장,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3월 2일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당신과 나의 전쟁’이 공개 시사회를 가진다. 이에 영화 제작에 참여한 미행(美行) 등이 쌍용차 노동자, 그 가족, 그리고 금속노조를 비롯한 다양한 제 노동․정치․사회단체․교수․작가들의 글을 통해 쌍용차 “파업 그 후”에서부터 비정규직, 정리해고가 만연한 우리사회를 되돌아보는 '88만원 세대와 쌍용', '한국사회와 노동자 파업'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쌍용차 투쟁과 현재를 점검한다. <편집자 주>
이일재 씨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중장비 학원으로 갑니다. 단 한 시간이라도 푹 잠들 수 있다면……. 밤새 몸을 뒤척이다 새벽을 맞곤 합니다. 그날 이후, 이일재 씨의 밤은 악몽과 끝없는 사투입니다. 잠에서 깨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입니다. 어김없이 새벽은 밝아오지만 삶은 어두운 밤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밤이 무섭습니다. 지난 여름 이후…….
이제는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뇌출혈로, 심근경색으로, 때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 사람들. 목숨이 아직 살아있는 해고자들은 발버둥을 칩니다. 살아남기 위해. 인력시장을 통해 공사장 잡부로 나갑니다. 밤을 지새우며 올빼미처럼 대리운전을 합니다. 시급 4천5백 원을 받으며 택배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죽은 자’의 멍에에서 도망치려고 일자리를 찾아 아등바등합니다. 발이 닳도록 고용센터를 들락거리며 이력서를 쓰지만 입사는커녕 면접 보러오라는 소식조차 없습니다. 다니던 학원을 그만둔 자식들, 식당으로 옷 가게로 돈벌이를 나가는 아내를 보며, 무능한 자신의 가슴에 못질을 합니다.
그곳에 일하는 일용잡부 가운데 100여 명은 최철호 씨와 함께 공장에서 일했던 쌍용자동차 동료들입니다. 이들과 마주치기 싫어 안산이나 송탄의 아파트 공사현장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심심찮게 동료들과 마주칩니다. 반가움보다는 계면쩍은 마음이 앞서 서로를 외면합니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 왜 해고가 됐는지 모릅니다. 소방호스에서 질금질금 흐르는 물로 양치질을 하며, 주먹밥으로 한 끼를 때우고, 최루탄과 경찰의 방패와 곤봉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며, 77일간 자신의 몸을 공장에 묶은 채 고통을 당한 까닭은 내가 왜 해고가 되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물음표로 남아있습니다.
“집에 갔는데 책상 위에 신용대출 용지가 있더라고요. 아내가 쓰지는 않았는데 어디서 받아놨는지 그게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 마음이……, 지금도 계속 씁쓸하죠.” 신용대출 신청서 앞에서 자신이 없는 동안 신용대출 신청서를 눈앞에 두고 수 십 번을 멈칫멈칫 했을 아내. 최영호 씨는 직장을 구하는 일보다 아내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게 먼저입니다. 아내는 최영호 씨에게 애원했습니다. 그깟 회사 그만두고 희망퇴직하고 나오라고. 아내는 물었습니다. 가정이 우선이냐, 동료가 우선이냐? 최영호 씨는 희망퇴직 대신 부당한 해고에 맞선 파업을 선택합니다. 그 선택은 해고자 낙인 위에 전과자 낙인을 더 찍게 됩니다. 아내는 남편의 선택을 이해는 할 수는 있지만 서운함마저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걸 최영호 씨는 압니다.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이 지금의 아내입니다. 7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고, 이제 20년 지기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아내와 함께 인생을 걷고 싶습니다. 석방된 뒤로 집에서 설거지와 청소를 도맡아 합니다. 너무 가까운 존재라 잊고 지냈던 아내에게 다시 20년 전 첫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병역의무를 마치고 쌍용자동차에 입사했을 때 최영호 씨의 소망은 소박합니다. ‘이곳에서 평생 일하고 싶다’, ‘사랑하는 이와 결혼해서 아이들도 키우고 노후를 준비하겠다.’ 쌍용자동차에서 쫓겨나는 순간, 그 꿈은 흐릿하게 사라집니다. 이제 어떻게든 살아남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옥쇄는 봉쇄가 되고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아직 비가 내립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삶을 취재할 때가 ‘아직은’ 아닙니다.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해고자이고, 이들이 내민 이력서에는 ‘사회에서 추방’이라는 붉은 낙인이 여전히 찍혀 있습니다. 처참한 절망을 확인, 또 확인하는 과정이 되풀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77일간의 옥쇄파업은 공권력과 자본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아 끝이 났지만, 해고노동자의 삶은 정부의 약속과 달리 생존권이 봉쇄를 당한 채 더 큰 고통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파업 이후,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삶은 세상에서 봉쇄되었습니다. 다시 옥쇄를 선택할지 모릅니다.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져 사라지는 것마저도 ‘봉쇄’된 이들의 삶 앞에 따뜻한 봄비가 되지 못하는 차가운 겨울비가 억수로 쏟아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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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쌍용 자동차 파업, 그 후 (권영국)
2. 파업 노동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오도엽)
3. 쌍용 공장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박수정)
4. 가족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윤희정)
5. 쌍용 자동차와 국내 자동차 업체의 향방은? (이종탁)
6. 확산되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광풍 (오민규)
7. 구조조정, 정리해고 광풍, 금속노조의 대응은? (금속노조)
8. 우리 사회는 쌍용차 파업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정재은)
[불안정 노동의 시대, 쌍용과 88세대는 어디에서 만나는가?]
1. 88세대가 쌍용을 말한다. (20대 필자)
2. 쌍용(노동운동)이 88세대를 말한다. (쌍용 노동자)
3. 88세대와 쌍용, 세대론과 계급론 (한윤형)
4. 신자유주의, 쌍용, 88세대 (이류한승)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파업이란 무엇인가?]
1. 쌍용 자동차 파업 시작과 끝, 그리고 현재 (미정)
2. 한국 사회와 노동자 파업 - 법과 제도 (권두섭)
* 자료 - 사법처리와 손해배상 실태 (금속노조)
3. 세계 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과 사회적 대응 (한지원)
4. 끝나지 않는 고통 : 파업 노동자의 고통 (제목미정) (강수돌)
5. 2008년 이후, 전세계적 노동자 파업 동향과 전망 (미정)
6. 한국사회의 노동자 파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문제 (강상구)
7. 파업을 선택하기까지 (쌍용 참가자, 가족의 목소리) (미정)
8. 파업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 : 파업? 노조도 안된다!
- 비정규직, 중소영세, 특수고용 (철폐연대)
- 대공장 비정규직 정리해고 (권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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