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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노동자 파업/기사 스크랩 (2010년)

[위클리경향]“우릴 잊지 말고 관심 가져 주세요”


원문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002121725471&pt=nv
[포커스]“우릴 잊지 말고 관심 가져 주세요”
2010 02/16위클리경향 863호
쌍용차 해고자 가족·KBS 계약직 해고자·복지시설 아이들의 ‘설 소망’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다가왔다. 사흘이라는 짧은 연휴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설 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설이 누구에게나 기쁜 날은 아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 KBS 계약직 해고자들이다. 이들의 힘겨운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이들은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생활고로 고통받으며,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현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이번 설이 힘겹기만 하다. 경제가 어려워져 후원금이 줄어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겼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설은 오히려 부담스럽기만 한 명절이다.


‘쌍용차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봄부터 여름까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의 77일간 옥쇄파업이 끝난 뒤 해고자들은 여전히 힘겨운 일상을 견디고 있다. 해고자들은 기약 없는 복직투쟁도 해야 하고, 가족을 위해 돈도 벌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직장으로 언제 돌아갈 지 전혀 모르는 무급휴직자들도 알아서 버텨야 한다. 해고자나 무급휴직자나 먹고살기 위해 대리운전 기사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견디고 있다.

22명의 조합 간부는 구속된 상태다. 1월 18일 수원지법 평택지 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한상균 쌍용자동차 노조지부장에게 징역 7년, 다른 노조간부 21명에게는 징역 2년에서 5년을 각각 구형했다. 설을 이틀 앞둔 2월 12일. 이들의 1심 판결이 내려지는 날이다. 가족들은 ‘희망반 걱정반’이다. 재판부가 어떤 이유로 1심 선고를 설을 앞두고 하는 것인지 예상하기 힘들다. 이정아씨도 이번 설을 희망반 걱정반으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이씨는 지난해 쌍용자동차 파업 기간 언론에 가장 많이 나온 주부다. 이씨는 두 아이의 엄마(얼마 전 셋째 아들이 100일을 치렀다)이자 노조 간부의 아내로 살아가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대표를 맡으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서 노숙투쟁도 처음 해 봤고, 사람들 앞에서 어색하게 구호도 외쳤다. 나중에는 전경들과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파업 기간에 이씨는 전업주부가 아닌 투쟁가로 변신했다.

쌍용자동차 파업이 끝난 뒤 이씨는 주부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임신한 상태에서 가족대책위 활동을 하느라 제대로 신경쓰지 못한 셋째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고 잘 커 주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얼마 전 셋째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됐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떡을 돌렸다. 이씨는 “둘째 때는 100일 잔치를 안했는데 셋째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커서 100일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첫째는 이번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해 어린이집 대신 쌍용차 파업장에 데리고 다닌 둘째도 이제는 수다스럽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구속된 남편만 빼면 예전의 일상을 회복한 셈이다.

그렇지만 쌍용자동차 사태가 모두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대하면 안타깝다. 이씨가 사는 아파트 주민 중에는 이씨 남편이 직장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씨는 “우리에게는 잊혀지는 것이 가장 서운하다. 근처에 계신 분들도 상황을 잘 모른다. 파업에 참여했다고 나중에 해고된 분들도 그렇고, 언제 복직될지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무급휴직자들도 안타깝다. 평택을 특구로 지정해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실상 지원되는 것은 초등학교 급식비 정도”라고 토로했다.

해고자나 무급 휴직자들 가운데에는 대리운전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정아씨도 대리운전을 불렀을 때 남편과 함께 일하던 직원을 만난 경험이 있다. “남편이 나오면 받겠다”며 대리운전비를 극구 사양하는 그 직원을 생각하면 여전히 미안하다. 누구나 돈이 아쉬운 사람들인데 그때 대리운전비를 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아내들은 마트나 사회단체에 취직해 남편 대신 생활비를 벌고 있다.

“이젠 평택이 징그럽다”고 하던 사람들도 쉽게 평택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고향으로 내려가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한 해고자는 자기 집에서 전혀 나오질 않는다. 혹시라도 길에서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쌍용차에 다니는 동료를 만날까봐서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쌍용차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씨는 “쌍용차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라고 들었다. 쌍용차에서 나온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이나 모두 힘들어진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씨는 남편의 구속 사실을 이야기해야만 도움 받을 수 있는 상황을 겪는 것도 해고자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셋째가 태어나기 전에 국가에서 지원하는 산후 도우미를 이용하려고 보건소에 갔다. 보건소에서는 의료보험 영수증이 필요하다고 했고, 의료보험공단에 전화를 했다. 이씨는 “그때 공단에서 남편이 직접 전화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 내가 아내라고 해도 그쪽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만 하더라. 남편이 쌍용차 파업 때문에 구속됐다는 이야기를 정말 하기 싫었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서러워서 절로 눈물이 났다.”며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의료보험 공단에 직접 찾아가 남편이 쌍용자동차 파업으로 구속됐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서야 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출산하기 위해 시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설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는 물음에 “설 전에 남편 1심 판결이 나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부산에서 올라오시기로 했다. 남편이 풀려 나면 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지만 23명 전원이 석방되기는 힘들 것 같아 걱정이다. 나오지 못한 이들이 있는데 남편만 나왔다고 박수를 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래저래 이번 설에는 웃고 지내기 힘들 것 같다”고 힘없이 말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KBS 계약직

1월 20일은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가 “해고무효 원직복직”을 외치면서 파업을 시작한 날로부터 200일이 된 날이다. 어느 누구도 KBS계약직지부의 싸움이 이렇게 오래갈지 예상하지 못했다. 계약이 끝났다고 무차별적으로 직원을 해고하고, 자회사로 전직을 요구한 사측의 불합리한 모습이 바로잡힐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KBS계약직지부의 투쟁을 이끌어 온 이는 홍미라 지부장이다. 그는 노동운동과 전혀 상관이 없는 평범한 사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9년부터 KBS에서 일해 왔다. KBS는 그에게 첫 직장이자 평생직장이다.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일해 온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갑작스런 해고 통보였다. 계약직 직원들은 노조를 만들었고, 홍미라씨는 지부장 역할을 맡게 됐다.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부끄러워하던 그는 언제부턴가 까랑까랑한 목소리의 투사로 변해 갔다. 심지어 KBS 사장 최종 후보가 되는 영광(?)도 경험했다. 

2009년은 홍미라 지부장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든 한 해였다. “지난해를 돌아보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고,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본관 계단에서 처음으로 피케팅도 해 봤고, KBS 사장 후보 면접 준비도 해 봤다. 내가 이런 것을 어떻게 했나 싶다.”

요즘 홍 지부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측과의 교섭뿐이다. 지난해 12월 7일 1차 교섭 때부터 KBS계약직지부는 사측과 직접 교섭했다. 그 전에는 언론노조가 교섭 당사자로서 들어갔지만 이때부터는 사측 요구로 KBS계약직지부가 직접 교섭에 참여하게 됐다. 1차 교섭은 막판에 협상 타결이 될 수 있었지만 노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사측이 제시함으로써 12월 23일 결렬됐다. 이에 KBS계약직지부는 다시 수요집회를 시작했고, 사측은 2차 교섭을 제안했다. 2월 첫째 주까지 홍 지부장은 사측과 함께 2주째 2차 교섭을 진행했다. 협상 결과는 아직 낙관할 수 없다.

“지난해 사측과의 교섭은 언론노조가 나섰다. 이번에는 회사에서 우리와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언론노조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직접 해 보자고 했다. 1차와 2차 교섭까지 우리가 직접 해 보니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협상을 계속하면서 우리도 발전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홍 지부장은 사측과 직접 교섭을 하면서 차라리 몸으로 투쟁하는 것이 쉽다는 생각까지 했다. 교섭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하루하루 마치 혼자 된 것 같은 느낌에 우울했다. 사측이 제시한 안을 조합원들에게 설명할 때면 마치 사측을 대변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혼란스러웠다. 조합원이 사측 안에 대해 질문하면 마치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했다. 사측과 처음 해 보는 교섭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요즘도 그의 머릿속에는 교섭을 어떻게 잘 마무리하느냐로 꽉 차 있다. 홍 지부장에게 이번 설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명절에 대한 느낌이 없다. 설레임도 없다.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상당히 부담된다. 부모님은 모든 것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하기 때문이다. 설에 고향에 가야 하나 고민 중이다. 고향에 간다고 해도 노조의 상황을 고민하느라 다른 것은 신경쓰지 못할 것 같다.”

홍 지부장은 요즘 외부의 관심이 떨어진 것을 걱정하고 있다. 교섭을 진행하느라 집회를 열지 못하고 있다. 외부에서 KBS의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생각할까 초조하다. 자신들의 상황을 바깥에 알려야 할 시점이지만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방법을 찾는 것도 시급하다. 사측과의 2차 교섭이 결렬돼 KBS계약직지부의 투쟁 상황이 더욱 길어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그의 새해 소망은 하루 빨리 일터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올해 소망은 조합원들과 내가 투쟁을 시작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때처럼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KBS계약직 해고자처럼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2월 2일 한진중공업은 조선 부문 352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을 부산지방노동청에 신고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는 파업에 들어갔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방침에 항의하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25일 동안 단식으로 항의해야만 했다.

사람이 그리운 복지시설 아이들

“예전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후원도 많았는데 올해는 더 추운 것 같다. 이곳에 있는 동생들이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많이 섭섭해 한다.”

서울 관악구의 상록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는 이 모군은 설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보육원에서 살았기 때문에 명절 분위기 변화를 잘 느끼고 있다.

“명절이 되면 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도 들뜨게 된다. 명절에는 복지시설에 사람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함께 놀아주고, 자원봉사를 해 주는 후원자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이번 설에는 많이 실망할 것 같다.”
이군은 3월이 되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다. 그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일도 힘들고 돈도 얼마 받지 못하는데 왜 그것을 하려고 하느냐”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군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려는 이유는 자원봉사자나 후원자로부터 받은 사랑을 복지시설의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복지시설 아이들에게 후원자들의 발걸음과 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서울시 아동복지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부청하 상록보육원 원장도 이번 설의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설을 앞두고 6곳 이상의 기업과 단체에서 방문 예약을 했지만 올해는 2월 3일 현재까지 단 두 곳의 기업에서만 방문 약속을 했다. 부 원장은 “복지시설은 정부 지원만으로 100% 운영하기 힘들다. 명절 때에는 후원자들의 도움이 절실한데, 이번 설에는 이런 도움이 적어졌다. 경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상록보육원은 그래도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이렇게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었는데 다른 곳은 더 어려울 것이다”고 전했다.

상록보육원은 자원봉사자와 후원금이 줄어들지 않은 복지시설 가운데 한 곳이다. 자원봉사를 하려는 학생들은 교육을 받아야만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 대학생은 6개월이나 1년 정도 꾸준히 봉사한다는 약속을 해야만 받아줄 정도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곳이다. 그러나 상록보육원도 예년에 비해 후원금이 10% 정도 줄었다. 지방의 경우 인건비를 주지 못하는 보육시설도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후원금이 줄어들면서 난방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복지시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선거법을 위반할 여지가 있는 방문과 후원을 하지 못하는 것도 복지시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부 원장은 “아이들은 사람이 많이 오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설에는 사람들을 더욱 그리워한다. 그러나 발걸음이 많이 줄어들어 걱정이다. 복지시설의 상황이 많이 어렵다. 이젠 국가에서 나서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제는 복지시설 지원을 지방자치단체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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