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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전쟁/상영회 후기

[후기-이채] 당신과 나의 전쟁

이채님이 블로그에 올려주신 글입니다. 
어느 여성 감독에게 들었던 아픈 지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관한 눈 밝은 지적들이 담겨 있습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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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민중의집에서 쌍용자동차 부당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태준식 감독의 <당신과 나의 전쟁>을 보았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정말 울고,

싶지 않은데 잘 안됐다. 무수한 불합리 중 하나로, 이 미쳐돌아가는 말세의 징조로 쌍용노동차 부당해고를 바라보았던 나는 그저 먹먹할 따름이다. 그래, 노동자가 죽으면

살 수 있는 기업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노동자가 죽어야 사는 기업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노동자를 죽이고 기업이 살아야 하나? 그런 기업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노동자 대 자본가의 구도는 틀린(마음 아프지만 무용한),

지도 모르겠다. 질문은 자본가/기업 대 사회라는 구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회는 그들의 노동으로 이윤을 창출했지만 사정이 나빠지자 어떤 합의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그것에 응하지 않자 용역 깡패를 불러다 폭력을 휘두르는 저런 기업을 용인할 것인가? 그런 무자비한 자본을 인정할 것인가? 그들에 기대어 테이저건을 쏘아대고 최루액을 뿌려대는 공권력을 인정할 것인가?

폭도도, 혁명가도 아니었고 그저 자기의 소중한 밥그릇을 지키고 싶었을 뿐인 노동자들이 경찰서로 자진출두하면서 보였던 그 편안한 표정이라니. 인간으로서 자존을, 최소한의 양식을 지켜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아우라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사실 제목 하나로 충분하다. "그들의 전쟁"이었지만 사실상 당신과 나의 (닥치지 않은) 현실일 뿐인, 그들과 나는 결국 연결된 노동자일 뿐이라는- 역설적이면서도 진실된 그 제목은.

그러나- 그 와중에 영화는 좀 어색했다. 감독은 무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위치 선정이 어정쩡했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쌍용차 사태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공장 점거에 함께했던 듯한데 그만큼 파고들지 못했다는 기분? 그러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럴 수 없었던 걸까?

감독의 목소리를 대신했을 전문 성우의 나레이션과 노동자의 나레이션은 어색하게 교차됐다. "감각적"으로 보이려는 노력은 좀 생뚱맞았다는 느낌.
오히려 물도 전기도 가스도 끊겨가는 어두운 공장 속에서 감독이 느낀 것들을, 노동자들이 느낀 것들을 더 담아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

마지막 부분에 삽입한 응시샷은 작위적이었다. 저 멀찍이 팔짱 끼고 보고 있을 관객들을 영화 속 현실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의도로, 관객들을 불편하게 할 요량으로, 이건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침묵으로 해석할 여지는 충분하나 좀 어색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노란 물결이 전국을 휘감을 때 시기적으로 대조를 할 수도 있겠으나 그들이 쌍용차 앞에 있었어야 한다는 강상구씨의 주장은 좀 쌩뚱맞았다.
영화에서 편집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했던 사람들은 한 부류가 아니다. 그저 "나라의 어버이"가 돌아가신 데 대한 슬픔을 표현한 부류도 있었을테고, 그의 정치지향에 공감한 이들도 있었을테고, 나처럼 그에 대한 실망이 컸지만 마음은 아팠던 부류도 있었을테고, 어쨌거나-

그 모든 물결을 노무현 지지자들로 단정할 수도 없거니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왜 쌍용 노동자들을 지지해야 하나. 노 전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경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정리해고나 "노동시장 유연화"에 반대각을 세우지도 않았었는데.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대통령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니 쌍용 노동자들을 지지했어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좋은 세상 만들려는 선한 기독교인들이 왜 노조 투쟁에 함께하지 않느냐는 질문 같았다.
  

무엇보다.. 미친 공권력이 투입되고 그 긴장 속에 "살아있는" 이들의 모습을 전쟁영화와 같은 느낌으로 찍은 것은(나만의 느낌인가요) 도무지 이해부득이다 쇠파이프를 긁고 특공대가 투입되고 콘테이너가 철거되고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두드려맞고 그런 일들이 왜 그렇게 담겨졌을까.

뭐 그런 걸 물어보고 싶었는데 감독이 안왔다-_-;;
금요일의 <외박>도 꼭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