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영어영문학과 10학번 김영신
쌍용차 노동자의 77일 투쟁에 관한 "당신과 나의 전쟁"이라는 영화는 저에게 많은 깨달음 보다는 의문과 혼돈을 가져다 줬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알고 있던 사건의 진상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죠. 사실 저는 신문, 잡지, 뉴스에서 보도된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분노했죠. 저도 '공권력'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저는 최근의 '데모'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악당'이 사라진 이 사회에서 의견의 대립을 용납하지 않고 상대방을 무조건 '악'으로 취급하고 '영웅적'행위를 하는 그들은 오히려 제게는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저의 전제에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물론 영화의 제작자들이 쌍용차 투쟁 관계자인 만큼, 영화도 한쪽 측면만을 보여준 면도 있습니다만, '악당'은 정말로 사라졌다는 전제를 저는 제고해보게 되었습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당연히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정리해고 시킬 수 있는거 아냐? 저 사람들을 다 수용하다가는 결국 다 같이 망하는거잖아. 저 사람들이 너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거 아냐? 게다가, 공장까지 점거하다니. 그냥 혼자죽기 억울하다 같이죽자, 라는 식이네."
이런 생각이었죠. 게다가 저는 그 투쟁이 77일이나 이어진 줄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화면에 비춰졌던 그들과 같이 '노란 물결'에 집중했거든요. 사실 집중하지도 못했죠, 왜냐하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고3이었으니까요. 화면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처절하게 싸워야만 했나." 초록빛 미래를 꿈 꿀 조그만 아이들까지 현장에 있는 것을 보며 잠시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다시 생각했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해야했을까." 흘러가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정말 마음을 울리는 한 아주머니의 호소를 들으며 잠시 눈물도 흘리다보니 그 답이 나왔습니다.
"살기 위해서." 일자리는 그 분들에게는 생명이었습니다. 쌍용자동차만의 위기가 아닌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일자리를 잃으면 어떻게 되는가 생각해봤습니다. 예전에는 쌍용에서 해고당하면 다른데 취직 못하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생명을 존속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사회적 의미에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일자리는 생명이었죠. 살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상황이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광주에서 있었던 일마저 떠오르는 노동자 진압과정을 지켜보며 영화 '화려한 휴가'에 나왔던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우린 폭도가 아니야!" 그저, 공장을 불법점거해서 어떻게든 회사에 피해를 입혀보려는, 망하려면 다같이 망하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다같이 살자"라는 생각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식품의 반입도 막히고 의료진의 반입도 막힌 극한의 상황에서 "협상 아닌 협상 "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안타까운 결과로 77일 투쟁은 끝이났습니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모임은 돈 있고 힘 있는 그들을 이기기엔 역부족 이었습니다.
예전에 일본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에 '일자리 나누기'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 없이 힘든 상황을 버텨간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는 경제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꼭 배부르게 먹어야만 사는것일까? 다 같이 조금 배고파도 나눠먹으며 살 수는 없는걸까?"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기업보다 빨리 경제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이제는 소니는 삼성에 비할 바도 못됩니다. 그런데, 삼성에서 일하는 우리 노동자들은 소니의 노동자보다 좋은 삶을 살고 있는걸까요? 자랑스러웠던 삼성의 선전이 오히려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추운 날씨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꽃나무 중에 유독 한 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반만 꽃봉오리가 맺히고 반은 앙상한 목련 나무가 있더군요. 영화에서 "우리는 반만 살아남은 것이다." 라던 나레이션이 생각났습니다.
꽃송이가 조금 작을지라도, 나무 한가득 꽃봉오리가 열리는 그런 대한민국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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