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는 살인이다.”
지
난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쌍용차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의 전쟁’의 시사회가 열렸다. 지난 5일 3차례에 걸쳐
‘당신과 나의 전쟁’ 내부 시사회가 열린 서울 영등포 금속노조 6층 회의실에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쌍용차 가족대책위, 그리고
쌍용차 투쟁에 함께 했던 연대 단위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쌍용차 투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여름, 사람들은 말했다. “정리해고는 이제 시작이다. 쌍용차에서 막아내지 못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물론 제조업과 공공부문 등 전 산업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정리해고가 발생할 것이다.”
기
대는 무너졌고 예상은 적중했다.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결국 강행됐다. 77일간의 공장 점거, 70m 높이의 굴뚝 농성, 노동자와
가족 등 6명의 죽음, 가족대책위의 수없이 흘려진 눈물 등. “함께 살자”는 외침은 정부와 자본에 의해 그렇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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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
2010년은 ‘예상했던’대로 정리해고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전 직원의 30% 구조조정 계획을 강행하려 한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과 유령처럼 사라져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해 24일간
곡기를 끊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금호타이어 역시 “경영악화, 경쟁력 확보”를 이유로 371명의 정리해고와
1,006명의 분사로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쌍용차 투쟁을 막지 못해서 일까. 지난 2009년 쌍용차의 정리해고를 막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래서다. ‘어제’의 쌍용차 투쟁과 ‘오늘’의 정리해고,
‘내일’의 공장을 잃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는 ‘그들의 싸움’ 아닌 ‘당신과 나의 전쟁’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 쌍용차
투쟁은 쌍용차 노동자들만의 투쟁만은 아니었다. 설사 그 투쟁이 그들만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하더라도, 정리해고는 이제 모든
노동자의 싸움이 됐으며, 공장을 잃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현재는 내일의 내가 될 수 있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아픔이고 기억이다. 영화를 감상하는 60여분 내내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렸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눌러놓았던 그때의 아픔이 다시
올라온다. 하지만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어제’가 ‘오늘’이고, ‘내일’되고 있기 때문에.
영화는 말한다.
쌍용차 투쟁은 쌍용차 노동자들만의 싸움이 아니었다고. 77일간 공장점거 파업에 일명 ‘산 자’들이 결합하고, 비조합원이 퍽퍽한
주먹밥을 나눠먹었던 이유는 “당장은 정리해고의 칼날을 피했을지라도 언젠가 또 다시 노동자들의 목숨을 요구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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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
‘산 자’로 공장점거 파업에 함께 했던 신동기(33)씨는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지난 11월 징계해고 됐다. 하지만 “그해 여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공장이 아직도 그립다”고 말한다.
노
동자의 전부였던 공장. 한 때는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의 터였던 곳. 그들의 땀이 베인 그곳이 어느
순간 ‘그들만의 성’이 됐다. 그들은 “살고 싶다”고 외쳤지만, ‘그들만의 성’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돼 갔다.
인권
이 사라진 곳. 그곳에서 그들은 “해고는 살인”이라 외쳤다. 또 “함께 살자” 외쳤다. 점거파업 69일 만에 열린 노사교섭은
힘겹게 타오르는 촛불과도 같았다. 영화 속 한 조합원은 “(교섭이 타결되면) 가장 먼저 공장부터 청소할 것”이라며 “내가 돌아올
공장이기에 옥상까지 깨끗하게 청소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7차례에 걸친 노사 교섭은 결국
결렬로 끝났다. 그리고 회사는 공장에 대해 단전조치를 내렸다. 그리고 이어진 단수조치와 의료진 출입 저지. 지난 8월 경찰은
공권력을 투입해 ‘그들만의 성’을 무너뜨렸다. 2009년 사용된 최루액의 95%가 쌍용차 공장 위에 뿌려졌다. 노동자들의 피부는
녹아내렸고 마음도 무너졌다.
“약 좀 달라”는 그들의 절규는 공장 밖을 넘지 못했다. 공장에 투입된 용역의 한
달 비용만도 28억 원. 노동자들의 한 달 임금체불액과 맞먹는 금액이다. 8월 6일 노사는 52% 구조조정, 48% 구제안에
합의했다. 77일간 함께 했던 ‘동지’들은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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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
누구보다 이기는 싸움이길 바랐던 그들. 공장에서 나오면 “가장 먼저 씻고 싶다”던 그들, “가족들을 보고 싶다”던 그들.
현
재 대부분의 쌍용차 노동자가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신 씨의 경우는 몇 안 되는 예외다. 신 씨는 현재 경기도 화성의
한 정육점에서 일하고 있다. 아내와 세 자녀를 위해 주말도 없이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120만 원이 고작이다.
그
는 말한다. “비누로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역겨운 (고기) 비린내”지만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그에게 그 곳은
“막다른 곳에서 얻은 직장”이다.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가 재취업에 실패하고 있다. 일용직을 전전하는 이들은 다반사다.
50
년의 역사를 지닌 쌍용차는 이렇게 노동자들의 삶과 미래를 흔들어 놓았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신 씨의 아내 역시 한 동안 우울증을 겪었다. 그도 공장에서 나온 뒤 한 달간 폐인의 생활을 했다.
함께
가는 길을 선택했던 사람들. 아직도 “공장으로 돌아가는 기대마저 버릴 수는 없다”는 사람들. “정리해고를 막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사람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서럽고 억울한” 사람들. 신 씨는 말한다. “죽을 때까지 2009년 여름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남은 인생의 바람은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당신과 나의 전쟁’은 잊혀진 듯 기억되고, 과거인 듯 현재가 되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전쟁과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010년으로 이어지는 정리해고의 굴레 속에서 또 다시 반복되고 있는 우리의 검은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비정규지회, 쌍용차 정리해고특별위원회, 미행美行, 필름메이커 등이 제작했으며, 오는 19일 오후 8시30분 대학로 하이퍼택나다에서 공개 시사회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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