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당신과 나의 전쟁
원문 : http://www.cmedia.or.kr/news/view.php?board=news&nid=5543
어릴 적 영화를 보려면 시오리 길을 걸어 면소재지까지 가야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천상 촌놈이라는 이유로 영화라는 것과 그닥 친하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관계로 극장에서 본 영화라고 해봐야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고 관람객 천만을 훌쩍 넘겼다는 그 유명한 영화들조차 명절특선영화로 만났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런 촌놈이 영화평이라고 쓴다는 것이 참으로 가당치도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온기 없는 화면을 마주하고 앉아 머리를 쥐어짜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은 그해 여름 버릇처럼 매일매일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멍울로 남은 기억들 때문입니다. 그해 여름 77일간 그곳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평가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한켠을 짓누르는 까닭 없는 불편함과 환부를 잃어버린 상처가 주는 통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94일을 굶고 6명이 죽고 77일을 옥쇄 파업해야 겨우 세상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그들! ‘당신과 나의 전쟁’이라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폭죽처럼 터지는 후레쉬 세례 속에 장밋빛 전망을 얘기하며 상하이차에 쌍용자동차가 매각되는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권에 의해 기업들의 해외매각은 국가를 살리는 지고의 가치로 왜곡되고 묵묵히 일만했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내몰려야 했던 이유를 내레이션 통해 담담하게 얘기해줍니다.
또한 일명 ‘살아남은 자’로서 옥쇄파업에 참가했던 쌍용차 노동자의 시각을 통해 77일간의 옥쇄파업 과정과 그 이후의 변해버린
일상을 요란스럽지 않게 전해줍니다. 하지만 나에겐 화면을 통해 다시 만난 그해 여름의 기억들이 힘겹기만 했습니다. 연두색으로
상징되는 가대위 엄마들의 눈물, 한없이 기다려야만 했던 그날의 막막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기억들, 시간이 흘러 아픔도, 슬픔도,
가슴속 상처조차도 잊혀지고 아물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봅니다.
맨 처음에는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소 소란스럽던 이들도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영화 속으로 빠져드는지 조용해지고 뒤에 앉은
동지들의 훌쩍이는 소리만이 늘어갑니다. 누구는 몇 년 전 자신의 남편이 해고됐던 기억이 더해져 눈물 흘렸다하고 누구는 그해 여름
전경들에 쫓겨 평택의 거리를 달리던 기억이 더해져 슬퍼했다는데 나는 차마 눈물 흘리지도 못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애꿎은 눈두덩만
비벼댔었습니다.
영화는 77일간의 전쟁을 지나 파업에 참가했던 쌍용차 노동자가 문자로 징계 해고통지를 받은 후 차창으로 스쳐가는 거리를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그 쌍용차 노동자는 얘기합니다.
죽을 때까지 77일간의 기억을 잊지 못할 거라고….
그렇습니다. 그해 여름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정리해고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77일간의 전쟁은 이제 평택을 넘어 이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해 여름만큼도 싸워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쌍용차
투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얘기했던 우리들은 아직도 그 전쟁을 준비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자본은 이 땅의 방방골골 공장마다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계속해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던 영화는 끝이 났습니다만 한 가닥 아쉬움이 남는 것은 나만의 감상인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자주 보지도 않고 감히 영화평은 쓸 엄두도 못 내던 촌놈이 굳어버린 뇌세포를 두드려 패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한
가닥 남는 아쉬움 때문이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에 모든 얘기를 담을 수 없음은 알고 있지만 영화에 대한 짧은 설명과 제목처럼 94일을 굶고 6명이 죽고
77일을 옥쇄 파업해야 겨우 세상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그들! ‘당신과 나의 전쟁’이라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이면서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로 내몰리고 자본과의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얘기는 했지만, 공장안과 밖에서 벌어졌던 77일간의 전쟁 모습을 보여주며 여러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는 했지만 이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자본의 무차별 폭격에 맞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전쟁을 공장안으로 한정하고 쌍용차 공장이 고립된 섬으로 남게 했던 모든 이들을 향한 냉혹한 비판을 통해 다시는
자본과의 전쟁을 외면하지 말라는 노동자들을 향한 외침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괜한 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그해 여름을 다시 보여주며 ‘너희들 지금 무엇하고 있느냐!’고 질타하고
있는데 우리가 했어야했던, 우리가 만들어 가야했던 것들을 무엇 하나 실천하지 못하고서 아프고 슬픈 기억을 되살려주는 영화를 향해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인가 봅니다.
그래서 나의 아쉬움은 영화를 향해있지 않고 나 자신과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습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이 땅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국민을 찾아 헤매고 있는 나와 우리를 향한 질타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해 여름. 스스로 다짐했던 나의 투쟁을, 우리의 투쟁을 만들어 오늘의 아쉬움을 달래고 오늘의 질타에 당당하게 답을
하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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