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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전쟁/리뷰 & 보도

[리뷰] 당신과 나, 지금 전쟁 중이신가

당신과 나의 전쟁
[기 고] 당신과 나, 지금 전쟁 중이신가

‘전 쟁이라는 말은 싫어요. 꼭 내가 살인자가 된 것 같아요.’

꿈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화를 보고난 후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해 잠든 새벽이었다. 누구일까. 모습은 없고 목소리만 들리던 남자를 찾아 아직 술이 덜 깨어 아픈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누구인가? 전쟁이라니? 이렇게 아픈 소리를 담고 있던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생각을 하던 중 어느 새 정신을 놓고 나는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아, 이번엔 그가 보였다. 함께 싸운 동지들을 다 죽게 만든 것 같아서, 전투의 수장이었던 자신이 꼭 살인자가 된 것 같아서, 제발 전쟁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 달라던 그 남자. 그는 붉어진 눈에 눈물을 담고 있던 한상균 지부장이었다.

‘어리석은 사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를 보며 떠올린 말이었다. 지부장이 되어 할 일이라곤 죽도록 싸우는 일과 감옥 갈 일뿐, 그 뻔한 날들을 눈앞에 보고도 그는 덜컥 쌍용차의 지부장 자리를 받아 들였다. 어리석은 사람. 좋은 세월을 누릴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무슨 심산으로 저 자리에 올랐을까, 아니지, 계산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저런 자리엔 오르지 않지. 정말 바보구나, 답답한 바보구나.

2006년과 2009년, 공장 안에서 함께 족구를 하던 노동자들과, 쪽팔려서 공장 근처에서는 살기 싫다며 이사를 간다는 해고된 노동자 사이에는 시간이 박혀 있다. 사람이 잘려 나가고 다치고 죽고 쓰러진, 끝끝내 마음에 깊은 병을 안고 눈빛마저 달라진 사람들. 그동안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노조 간부의 젊은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 소리내어 울었던 한상균 지부장의 눈을 카메라가 담았다. 집요하게 쫓아가는 카메라의 렌즈가 그의 눈을 담을 때도 그는 밀쳐내거나 눈을 감지 않았다. 쭈그리고 앉아 그는 울고 있었다. 오, 필승 코리아가 공장 안으로 후벼 파고 들어온다. 오늘만이라도, 단 하루라도, 오 필승 코리아를 멈출 수 없냐고 항의했지만, 새파란 젊은 여인이 관 속으로 들어갈 때도, 영안실로 달려간 남편의 오열이 관을 덮을 때도, 오 필승 코리아는 공장 안으로 독가스처럼 퍼지고 있었다. 사람은 얼만큼 더 단련되어야 이런 잔인함 앞에서도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가. 미치지 않기 위해 봉합해야 했던 기억들을 영화는 잔인하게 풀어 놓는다. 스크린 위에서 현실이 되어 돌아온 시간들, 아,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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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식(르포작가) / 2010-04-14 오후 5: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