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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전쟁/리뷰 & 보도

[리뷰-미디어스] '당신과 나의 전쟁'은 결국 우리의 전쟁이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결국 우리의 전쟁이다
[이재훈의 관조와 몰입 사이] 쌍용차 투쟁 다큐 영화에 대한 작은 보고서
2010년 04월 05일 (월) 09:38:50 이재훈/ 메트로 기자 webmaster@mediaus.co.kr
 

   
  ▲ '당신과 나의 전쟁' 포스터. ⓒ'당신과 나의 전쟁' 공식 블로그  
 
2008년 초여름은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하는 촛불로 뜨거웠다. 10대부터 노년층까지 시민들은 광화문에 꾸역꾸역 모였다. 21년 만에 100만명이 군집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분석과 해석이 난무했다. '저들의 군집화를 이끈 동력이 과연 무엇일까'가 관건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달리 이번 촛불은 군사정권과 같은 명확한 투쟁의 대상이 없지 않느냐'가 고민의 시작점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분석의 틀을 금세 찾아내 공격 대상을 정하고 탄착점을 포착했다. '분명 저들을 이끈 배후가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대통령은 "저 양초들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하는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집회를 '주도'했을 것이라고 판단한 '좌파' 시민단체를 색출했고, 이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촛불을 켠 증거'들을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대통령과 경찰의 사고는 1980년대보다 더 이전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시민들은 정부의 그런 시대착오적 무지에 콧방귀를 꼈다.

'이해할 수 없는' 군집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정부는 언론보다 감각이 떨어졌다. 자본에 의해 작동하는 언론은 기민하게 전략을 짤 줄 알았다. 핵심은 대상의 분절화였다. 언론은 즉각 '시민'들과 '선동 단체'들을 구별지었다. 학생 운동권과 노동자 단체가 '시민참여 분위기 속에 나서기가 부담스러워 조용히 개별 참석했다'고 적었고, "정치집회 비판 여론을 잠재우자"는 논리에 따라 '주최(?)'측이 깃발 동원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상적인 소재인 쇠고기 문제에 남성들의 참여가 적어 여성들이 촛불을 주도한다고도 했다. 시민들은 역시 콧방귀를 끼려했지만 뭔가 찜찜했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을 구분지으려는 언론의 시각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노동자 단체의 깃발에 선동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 까닭은 그들이 일상에서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10대는 '공장에서 일하며 몸으로 노동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하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으며 산다. 20대 역시 같은 이유로 스펙 쌓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30대에게 노조는 '일하지 않으면서 무리하게 몫만 요구하는 이들'로 자리매김한지 오래고, 40대 이상에게 노동자라는 단어는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타자화한 대상이었다. 그렇게 노동자는 그 자리에서 '시민'으로 인정받길 거부당했다. 집단지성으로 일군 촛불은 저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것이 분명하지만, 그 안에서 '군집의 섬'처럼 배타적으로 내동댕이처진 대상이 있었던 것 또한 분명했다. 자본은 그렇게 일상으로 스며들어 주입한 이데올로기를 통해 군집을 분절하고 대상을 구분짓는 전략을 구사할 줄 알았다.

   
  ▲ '당신과 나의 전쟁'  
 
7개월 만에 스크린을 통해 만난 신동기(33)씨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썰고 있었다. 써는 손이 어색해보였다. 파르르하게 바투 깎았었던 머리칼은 그새 한 움큼 자라 있었고 최루액이 들어가 붉게 충혈됐던 눈은 흰자위를 어느 정도 되찾은 듯 보였다. 한 달에 130만원가량 받아 밥벌이를 한다고 했다. 쌍용자동차에서 일하다 옥쇄파업에 동참했고, 징계위원회를 거쳐 지난해 11월23일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그를 처음 만났던 건 쌍용차 옥쇄파업이 막 끝난 지난해 8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원래 정리해고 대상이 아니었다. '산자'로 불렸다. 하지만 그는 77일 동안의 옥쇄파업 내내 공장을 지켰다. 밥벌이의 지난함, 아니 안정적인 밥벌이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나로선 언뜻 이해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저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해해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되진 않았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의 답은 명료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죠. 인간적인 도리까지 저버리면서 돈을 벌라면, 차라리 도둑질을 하고 맙니다. 내가 똥을 푸더라도 당당하게 돈 벌어서 애들 키우고 싶었어요. 쇠고기 먹고 싶으면 돼지고기 먹으면 되고, 그게 안 되면 닭고기 먹으면 됩니다. 단계를 낮춰가며 살면 되는데, 내가 나 하나라고 쉽게 외면하면, 곧 전체가 그렇게 외면하고 말잖아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는 '시민'들이 들을 때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도록 우리 안에서 배척당해왔던 '학습한 노동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되바라지게 얘기하자면 동네 형들과의 '마초'적인 의리를 중시하는, 그저 한 명의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노동자인가, '일반 시민'인가. 하나의 개인으로 오롯한 그를 나는 두 개의 호명으로 구분지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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